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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대릉원(천마총)
이름 : 관리자. 작성일 : 14-06-11 19:38. 조회수 : 2,430.


경주시내 평지 고분군(平地 古墳群) 가운데 서남쪽 부분으로 20여기(餘基)의 대소(大小) 고분이 남아 있다. 그중 전 미추왕릉(傳 味鄒王陵)을 중심으로 밀집 분포된 18기(基)의 고분들은 1973년 대릉원(大陵苑)이라 이름 붙여진 고분공원(古墳公園)으로 조성되었다.

지상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 고분들은 외형상 모두 봉토분(封土墳)으로 되어 있으며 단독의 원형분(圓形墳)과 함께 표형쌍분(瓢形雙墳)도 있다. 이 고분들은 대부분 고신라(古新羅) 특유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된 109호분에는 순차적으로 조성된 3개의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가 있었고 그 가운데 먼저 아래에 만들어진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고신라 적석목곽분(古新羅 積石木槨墳)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에 발굴된 천마총(天馬塚)(제155호분)에서는 금관(金冠)과 금제과대(金製과帶)를 비롯하여 무기(武器), 마구(馬具), 금속용기(金屬容器), 칠기(漆器)등 각종의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채색 천마도(彩色 天馬圖)를 그린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말다래[장니(障泥)]가 나와 최고(最古)의 고신라 회화(古新羅 繪畵)자료를 제공하였다.

1973-5년에 발굴조사된 황남대총(皇南大塚)(제98호분)은 원형분 2기(圓形墳 2基)가 남북으로 연접된 표형쌍분(瓢形雙墳)으로 남북길이 120m, 동서직경 80m, 높이 23m인 경주 최대의 고분이다. 조사 결과 남분(南墳)이 먼저 축조된 남자무덤이고 북분(北墳)이 뒤에 추가된 여자무덤이었음이 밝혀졌는데, 남북분에서는 모두 먼저 통나무로 가구(架構)를 설치하고 냇돌을 쌓은 적석부(積石部)가 발견되어 고신라 적석목곽분(古新羅 積石木槨墳) 초기 대형분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또한 먼저 축조된 남분에는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이 동서로 배치되어 있었으나 뒤에 추가된 북분에는 부곽(副槨)이 생략되어 있어 적석목곽분의 내부구조 변화도 알려주었다. 남분(南墳)에서는 금관(金冠)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금제과대(金製과帶)를 비롯한 각종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고 특히 여러 벌의 마구(馬具) 중 한 벌은 안장(鞍裝), 등자(등子), 재갈, 각종 장식구(裝飾具) 등 모두가 비단 벌레 날개로 장식되어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북분(北墳)의 피장자(被葬者)는 금관과 금제과대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조사된 신라고분 가운데 가장 많은 금제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으며 부장품(副葬品) 중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침각명(針刻銘)이 있는 은제대구(銀製帶具)가 있어 피장자(被葬者)가 여자였음을 증명하였다.


한편 1966년도에 조사된 151호분에서는 횡구식석곽(橫口式石槨)이 발견되었고, 고분공원 조성에 따른 공사 중 대형분(大形墳) 사이 사이에서 지상(地上)에는 봉분(封墳)이 나와 있지 않은 소형 고분 수백기(數百基)가 지하(地下)에서 발견되어 조사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뿐만 아니라 수혈식석곽분(竪穴式石槨墳), 옹관묘(甕棺墓)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적석목곽분 가운데에서도 여러가지 형식의 다곽분(多槨墳)들이 있어 고신라 묘제(古新羅 墓制)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